메인스트리트 : 그때사 그치록덜 살았주기 ⑦ 고원정
메인스트리트 : 그때사 그치록덜 살았주기 ⑦ 고원정
  • 숨비소리
  • 승인 2019.03.28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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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포리 월드컵 4

운을 떼놓고도 잠시 머뭇거리는 바람에 긴장감은 더해졌다. 음, 음 하고 목청을 가다듬는 천만이 삼춘.

“그 전에 꼭 한 마디 해사 허커라.”

“... ...”

“그 뭣이냐, 선수의 자제 말인디... 암만 촌동네 선수라도 선수는 선수라, 이 사름덜 보는 눈도 있곡... 그 자세가 돼 이서야 헌다, 이거라. 실력도 실력이주만은, 몸도 관리해사 허곡... 날 봐. 이 나이라도 배도 안 나오곡, 열심히 허는 걸론 누게한티도 떨어지지 안 허여...”

역시 자기 추천인가?

“겐디, 젊은 나인디도 배 나오곡 졸바로 뛰지도 못헌다 허민, 이건 선수 자격이 어신 거라...”

그 시선이 좌중을 한 바퀴 돌아 멈추는 자리, 막 초간장에 찍은 돼지고기를 입에 넣는 사람.

“우진아.”

“... ...”

“미안허다. 느가 이번에 빠져사 허켜.”

아-하고 누군가 탄식하는 소리가 들린 건 인섭의 착각이었을까. 우진형은 입 안 가득 넣은 고깃점을 차마 씹지 못하고 있었다. 왕포리 대표팀 경력 8년만의 탈락이었다. 역시, 하고 인섭은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다까뽈 선수」에게는 그 나름의 관록과 배짱이 있었다.

“예비선수에도 못넣으켜. 휴가, 잘 지내당 가라.”

못을 박아놓고, 목소리를 높인다.

“골킾은 강호중!”

와아-하는 함성이 천막 쪽에서 일어났다. 인섭은 다시 한 번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35세 노장. 8년 전, 한창 나이에 우진이형에게 자리를 뺏기기 전까지는 부동의 골키퍼였다. 최근 연습경기에서도 여전한 기량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그래도 김우진」이란 고정관념에 밀린 형국이었는데... 오늘도 선발될 거란 기대는 접은 탓에 팽나무 아래가 아닌 천막 안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쪽을 향해 천만이 삼춘이 재촉한다.

“뭣 햄서? 올라와!”

골키퍼로는 왜소한 체격의 호중이형이 머리를 긁적이며 일어나 자리를 옮겨온다. 그 사이 우진이형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일어서서 반대편으로 걸어나간다.

“야, 미안허다...”

호중이형이 한 마디 하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그 뒤뚱거리는 뒷모습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인섭은 수첩의 한 이름에 두 줄을 긋고 다른 이름을 새로 써넣었다. 그 호중이형이 선수들 틈에 자리잡기를 기다렸다가, 천만이 삼춘이 코치 찬구형에게 묻는다.

“불만 이시민 골으라. 이시냐?”

“어수다.”

지체없이 대답하는 찬구형의 표정은 밝았다. 이 건 마치, 두 사람의 고수가 두는 멋진 바둑 한 판이 아닌가... 인섭은 속으로 혀를 차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아직도 「신의 한 수」가 남아있었다. 천만이 삼춘, 왕포리 대표팀 백천만 감독이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불만이 어시민, 나, 감독 역할은 이 걸로 끝!”

뭐라고?

“이제 난, 뒤에 앉아만 이실 거난, 코치가 다 알앙 허여, 이?”

웃으면서 자리를 찾아 앉는 천만이 삼춘. 잠시 영문을 몰라 하던 사람들 속에서 누군가가

“야, 백천만이 멋지다!”

소리치 것을 신호로 환성과 박수가 요란하게 쏟아졌다. 그 박수소리에 맞춰 한 여인이 막걸리 주전자와 잔을 들고 나타났다. 「옵서게집」 주인이었다. 천만이 삼춘에게로 다가간다.

“내 술 한 잔 받읍써요.”

여전히 어색한 사투리와 함께 막걸리를 따른다. 크게 외친다.

“왕포리 최고 멋쟁이!”

그 동안의 사정을 다 알고 있는 기색이다. 다시 박수가 터져나오고, 휘익, 휘익 휘파람까지 불어댄다.

“거, 나도 한 잔 줍써.”

시윤이형이 잔을 내밀었지만 「옵서게」 아줌마는 힐끗 쳐다봤을 뿐, 콧방귀도 뀌지 않고 등을 돌려버린다. 와하하하.... 운동장 가득 웃음소리가 울려퍼진다.

이제 남은 고비는 13일의 참가신청 마감과 대진추첨이었다. 우선 과연 몇 팀이나 출전할 것인가가 관건이었다. 왕포리대회는 8월15일. 전통을 자랑하는 동도축구대회는 15, 16 이틀간이다. 청년회장과 이장을 앞세운 섭외부가 부지런히 발품을 팔았지만, 「최소 8팀」이라는 목표 달성에는 낙관도 비관도 할 수 없는 형국이었다. 「동도동대회는 1부리그, 왕포리대회는 2부리그」라는 게 냉정한 세평이었다. 1만원의 상금이 과연 달콤한 미끼가 될까? 청년회장은 다른 분석을 내놓았다. 동도동대회에선 우승을 놀릴 수 없는 팀도, 이 쪽 대회에서는 욕심을 내볼 수 있으니 온다는 것이었다.

마감시간인 오후 3시가 가까워오자 한 마을 한 마을 대표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인섭은 마을회관 입구에 책상을 놓고 앉아서, 참가신청서를 쓰게 하고 선수명단을 받았다. 선수명단을 받는 것도 다른 대회와 차별화한 점이었다. 대개는 명단을 따로 받지 않기에, 「부정선수」 논란이 심심찮게 벌어지곤 한다. 아예 명단을 미리 받은 후에, 의심스러운 선수는 대회당일에 주민등록 등본을 제출하도록 했다.

홈팀 왕포리.

장선리.

주산리.

동가리.

오성리.

구암리.

일곱 번째, 면소재지인 용화리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선수명단을 점검하던 찬구형이 고개를 갸웃, 했다.

“이두평?”

용화리 대표로 온 이장과 쳥년회장 중에, 청년회장이 맞받았다.

“이두평. 무사?”

“그 이두평이?”

“그 이두평이.”

무슨 선문답같았지만, 인섭을 비롯해서 모든 사람들이 알아들었다. 바로 동도동 대표로 「도선수」이 「그 이두평」이다. 무심코 넘겼던 인섭도 새삼 명단을 확인했다.

이두평, 29세.

“이 거, 무슨 경우라?”

찬구형이 얼굴을 붉혔다.

“아, 무사?”

용화리 청년회장은 태연하기만 했다.

“동도동 선수가, 무사 용화리로? 이 거 부정선수 아니라게! 욤치도 어시 원...”

“욤치가 이시나 어시나... 등본은 여기 이서.”

용화리 청년회장이 봉투 하나를 내민다. 받아서 뜯어본 찬구형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혀를 찬다.

“이 거, 이 거...”

책상 위에 내려놓은 주민등록등본을 인섭도 들여다보았다. 세대주는 청년회장인 듯하고, 이두평은 「동거인」으로, 전입일자는 5월1일이었다. 용화리 청년회장이 어깨에 힘을 준다.

“나가 알기로는... 도민체육대회도 삼개월 전에만 전입허민, 문제가 안 되는 걸로 아는디, 왕포리가 그보단 더 쎈가?”

“... ...”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찬구형도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물러났고 인섭은 명단을 접수할 수밖에... 하지만 이해하기 어려웠다. 5월1일이면 왕포리 대회는 거론도 되기 전이니 동도동 대회를 노렸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왜 동도동의 스타플레이어가 용화리로? 들은 풍월이지만 이런 경우 크게 두 가지 사연이 있다.

하나는 돈. 시골축구대회라지만 마을끼리의 자존심 대결이기에 돈을 받고 뛰는 선수가 제법 있다.

또 하나는 감정. 본인 출신 마을에서 뭔가 기분 상한 일이 있으면 적을 옮긴다.

어느 쪽일까? 하긴 문제는 그 게 아니었다. 「도선수」 이두평까지 전입시키면서 동도동 대회를 노리던 용화리가 이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건... 기필코 우승하겠다는 의지였다. 「배구마을」이라 늘 축구에선 기를 펴지 못하던 한을 풀어보겠다는 소리였다. 그래놓고도 참가하네, 마네 속을 썩이고... 제대로 한 방 맞은 셈이었다.

용화리 이후로는 더 이상 참가신청이 없었다. 「최소 8팀」을 위해 3시30분까지 기다렸지만 헛수고였다. 7팀이면 대진표도 복잡해진다. 부전승으로 올라가는 팀이 생기는 것이다.

“할 수 이서? 이대로 가야주.”

“아, 거 정말...”

“마감허주.”

인섭이 신청서와 명단을 챙겨드는데, 헐레벌떡 회관 안으로 뛰어드는 사람이 있었다.

“우리도 참가합시다!”

하얀 반팔 와이셔츠를 깔끔하게 입은 중년사내였다. 혼자였다.

“번동보육원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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