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스트리트 : 그때사 그치록덜 살았주기 ⑥ 고원정
메인스트리트 : 그때사 그치록덜 살았주기 ⑥ 고원정
  • 숨비소리
  • 승인 2019.03.19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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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포리 월드컵 3

한여름 더운 날이 채 저물기도 전에 마을잔치는 시작되었다. 운동장 한 구석에 가마솥 두 개를 걸어놓고 돼지고기를 삶아내는 냄새가 말 그대로 사람들을 환장하게 했다. 천만이 삼춘이 집에서 키운 돼지는 무려 130근이나 되는 고기를 제공했다. 100근을 「혼 층」이라고 하는데 층이 넘으면 큰 돼지로 쳤다.

어디 고기 뿐인가. 옵서게집 세 모녀가

‘잔치에 고기만 먹나?’

하고 나서서 번철을 걸고 연신 빈대떡을 부쳐냈다. 「싸비스」였다.

두 개나 쳐놓은 천막엔 멍석이 깔리고, 둘러앉은 사람들 사이사이에 한 말 들이 막걸리통과 주전자가 놓였다. 선수가 아닌 이상 적어도 마흔 나이는 되어야 천막 안에 자리를 잡을 수 있다. 20대, 30대들은 안주접시를 나르고 술을 따르는 사이에 요령껏 한 모금씩 마시고 고깃점을 집어먹어야 한다. 미성년자는 출입금지다. 조무래기들은 교문께에 모여서서 침을 흘릴 뿐이지만, 가끔 비위좋은 놈들이

“어머니...”

하고 고기 삶는 제 어머니를 찾아들어와서 비겟살이라도 얻어먹고 도망가곤 했다.

막걸리는 충분했다. 이장, 청년회장, 부녀회장이 한 말씩, 옵서게집을 제외한 세 식당에서 각각 두 말씩, 그 외에도 동네에서 방귀깨나 뀐다는 「유지」들이 경쟁적으로 한 말씩, 막걸리통이 발에 치일 지경이었다.

“어, 좋다!”

“걸게 차려싱게!”

흡족한 탄성들이 터지는 운동장 안에서 최고 상석은 팽나무 아래였다. 큰 나무 작은 나무가 나란히 그늘을 드리운 그 자리에는 대회 「임원」들과 선수후보들이 모여앉았다. 이제는 아예 「총무」라 불리게 된 인섭도 그 틈에 끼여 있었다. 차마 술잔은 입에 대지 못하고 고기만 집어먹으면서 좌중의 분위기를 살펴야 했다.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이 또 하나 있었으니 바로 천만이 삼촌이었다.

“선수가 무신 술?”

이러면서 연신 돌아오는 막걸리잔을 사양하고 있었다. 그럴수록 코치 찬구형의 이마에 잡힌 주름은 더 깊어지는 것만 같았다. 집돼지까지 아낌없이 내놓은 저 「다까뽈 선수」를 어쩔 것인가 말이다. 고민거리는 또 있었다. 「관보선수」 두 명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귀향했는데 골키퍼인 일병 우진이형이 문제였다. 이른바 「짬밥살」이 올라서 거의 뒤뚱거리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몸놀림이 정상일 리 없었다. 점프도 제대로 안 되고, 허리를 굽히지 못해 땅볼은 가랑이 사이로 빠뜨리고...

“연습허민 괜찮아집네다.”

본인이 큰소리 치고, 열다섯 때부터 왕포리 골문을 지킨 관록을 믿어보자는 의견들이 다수였지만, 인섭이 보기에도 불안불안했다.

「김우진- ???」

이렇게 수첩에 적어놓고 있었으니, 잔치가 파하기 전에 선수명단을 발표해야 하는 찬구형의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도선수」에 「말술」인 서른살 충일이형은 거침없이 벌겋게 취해가고 있었다.

“어이, 총무!”

둘러앉은 건너편에서 인섭을 부른다.

“예.”

“대회규정이 어떵 됌서?”

“비기믄 어떵헐 거라? 연장전 이서?”

“어수다. 바로 승부차기 마씨.”

“아, 승부차기이. 신식이네이.”

신식이기는... 70년 멕시코 월드컵부터 FIFA 규정이 바뀌어서 시골축구대회도 다 승부차기를 한다.

“옛날, 제비뽑기 헐 땐 있지이...”

충일이형은 장기인 옛 추억담을 꺼낸다. 승부가 나지 않아서 「추첨」으로 승패를 가리던 때의 이야기다.

쪽지 두 개에 각각 승(勝), 패(敗)라 쓰고 봉투에 넣는다. 양팀에서 대표 한 명씩 나와서 가위바위보로 우선 선후를 가린다. 그 둘 앞에 두 봉투를 떨어뜨린다. 가위바위보에서 이긴 사람이 먼저 집는다.

“그 때, 먼저 떨어지는 걸 잡는 거라. 그 게 승이라, 백발백중!”

“무사?”

“한자로 쓰인 승이 패보단 획수가 더 많주게. 무거우난 봉투가 먼저 떨어지는 거라.”

“아하!”

감탄사가 터져나온다.

“역시 도선수가 달라!”

인섭은 몰래 쓴웃음을 짓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거운 쪽이 먼저 떨어진다는 소리도 말이 안 되지만, 한자로 「勝」과 「敗」는 불과 한 획 차이다.

“그 건 옛날 말이고예...”

젊은 도선수 석춘이형도 나선다

“승부차기, 피케이도 다 요령이 이수다. 알암수과?”

승부차기는 경기중의 PK든 골키펴와의 눈치싸움이다. 왼쪽이냐, 오른쪽이냐... 골키퍼는 둘중 한 쪽을 예측하고 몸을 날린다. 그럴 때!

“그냥 가운데로 빵! 차부는 거라 마씸. 백발백중!”

이 쪽도 백발백중. 다시 탄성이 터진다. 하지만 두 눈이 게슴츠레해진 충일이형이 제동을 건다.

“어이. 석춘이.”

“예.”

“어느 대회서 기영 차봐서?”

“예?”

“구체적으로, 언제, 어느 대회, 어느 시합에서 그치록 행 이겨봤느냐고오...”

“형님!”

“아, 고라봐아.”

행티깨나 있어보이는 눈을 흘겨쓰는 충일이형이지만, 석춘이형도 한 성깔 하는 인물이다.

“형님은 어디서 기여우 제비뽑기 허영 이겨봅디가?”

“무시거?”

“형님부터 고라봅서.”

“야, 강석춘!”

자리를 박차려는 충일이형보다 앞서 일어서는 사람이 있었다. 찬구형이었다.

“다덜 들읍서!”

드디어 명단 발표다. 팽나무 아래, 천막 안은 물론, 고기 삶고 빈대떡 부치는 쪽, 멀리 모여선 조무래기들까지 모두 조용해진다. 충일이형과 석춘이형도 분을 삭이는 모습이다. 인섭은 찬구형의 기민함에 감탄하면서 수첩을 펼쳐들었다. 찬구형은 메모 한 장 없이 호명하기 시작한다.

“꼴킾 김우진!”

탄성과 한숨이 반반이다. 힐끗 보니 우진이형은 씨익 웃으면서 고기를 집어먹고 있었다. 턱살이 두 겹이고 배가 불룩하다. 과연 될까? 인섭은 고개를 갸웃했다. 차례로 이름이 불려진다.

김시윤.

강석춘.

이창민.

양한수.

김충배.

박태일.

이 대목에서 와아-하고 모두가 놀란다. 태일이는 중3이다. 우진이형 이후로 역대 최연소 발탁이다. 내로라는 도선수들도 다들 고등학생 때나 왕포리 유니폼을 입었었다.

이충일.

송윤기.

오추성.

고기철.

“에비선수는 강성길, 김동표... 이상이우다.”

후보선수를 「예비선수」라고 부르는 배려까지 하는 찬구형이었다. 하지만... 다들 숨이라도 멈춘 듯 조용해졌다. 「다까뽈 선수」 백천만 삼춘의 이름이 끝내 빠져 있었다. 집에서 키운 돼지까지 아낌없이 내놓았건만... 모두의 시선이 고개를 떨군 그에게로 쏠리는 순간, 찬구형이 다시 목청을 가다듬었다.

“기영 허고, 예. 이번 대회부터 우리도 국가대표팀겉이 감독을 따로 두기로 해수다. 나가 코치, 그 우에 감독.”

“... ...”

“감독 백천만씨!”

잠깐 동안의 침묵. 그리고 와아- 탄성과 함께 박수가 쏟아졌다. 혀을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찬구형이 마치 제갈공명처럼 보였다,

“감독님! 한 마디 헙써!”

찬구형의 권유에 몸을 일으키는 천만이 삼춘의 얼굴표정은 착잡해보였다.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상황이 아닌가.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고 나서 입을 연다.

“좋수다, 나가 감독 헙주.”

다시 환성. 다시 박수.

“겐디, 코치한티 하나 물어보커라. 나가 감독이민 선수 선발 권한도 있지이?”

좌중이 모두 숨을 죽였다. 어쩌겠는가? 찬구형이 고개를 끄덕인다.

“예, 맞수다.”

“나가 딱 한 명만 교체허커라. 괜찮지이?”

“예.”

감독이라는 명분 하에 스스로 자신을 선발하면 어찌 되는가. 찬구형의 계책도 자충수가 되어버린다. 장본인 백천만 감독님도 꿀꺽 침부터 삼킨다.

“그 한 명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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