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협동조합 만들어 우리 아이 교육하기 5
교육협동조합 만들어 우리 아이 교육하기 5
  • 숨비소리
  • 승인 2019.03.03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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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협동조합의 선구, ‘로치데일 협동조합’

일곱 명의 엄마들이 처음부터 교육협동조합에 대한 생각이 일치했던 건 아니다. 교육협동조합이야말로 우리 교육을 살릴 수 있는 최상의 길이라는 유비엘관장의 확고한 신념이 어느 정도 중심을 잡아주긴 했지만 쉽지는 않았다. 그런데 협동조합의 선구인 ‘로치데일 공정선구자 협동조합’에 대한 공부가 이어지면서 뜻이 확실하게 하나로 모아지기 시작했다. 로치데일 협동조합이 노동자들로 하여금 ‘좋은 빵을, 공정한 값으로’ 먹을 수 있게 해주었던 역사적 사실이 주는 교훈은, 오늘날 우리에게는 ‘좋은 교육을, 공정한 비용으로’ 실현해 줄 수 있게 하는 기반이 된다.

허구헌날 남들한테 매달리거나 자기들끼리 한탄하거나 자학하거나 체념하지 않고, 자기들 자신과 앞선 실패들로부터 교훈을 얻어, 종국에는 십시일반, 그들 자신의 동원 가능한 자본을 스스로의 힘으로 조직했다는 거 아니예요? ‘스스로 동원 가능한 실천적인 힘’, 그게 로치데일의 가르침이 아닐까 해요.
로치데일 협동조합 선구자들

가람이 남매

교육협동조합을 만들기로 대충 합의를 본 그들이었지만 여전히 핵심적인 고민은, 바로 이러저런 교육문제를 해결하는 데 “왜 꼭 교육협동조합이라야 하는가?” 하는 물음이었다. 우선, 이지헌의 단짝 양호영은 별로 그럴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한다는 반응이었다. 양호영의 딸 보람이나 오빠 가람이는 경제적으로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났다. 보람이와 가람이는 이곳에 하나 있는 영어유치원을 다녔다. 초등 4학년 보람이는 개인과외로 영어, 수학, 독서논술, 첼로, 그리고 수영을 하고 있었다. 중학교 1학년인 가람이는 원어민영어와 영어문법, 수학정석, 독서논술, 그리고 바이올린과 검도를 해왔다. 오누이 사교육비를 합치면 족히 월3, 4백이나 되었다. 그것도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때 서울 등지로 보내는 MIT 캠프나 스키 캠프, 그리고 2년에 한 번은 꼭 나가는 해외여행 등에 드는 비용은 제외한 것이었다. 보람이는 1년 정도 대정읍에 새로 생긴 국제학교를 다녀볼까 하고 있었다.

“아이들 사교육비? 그건 투자야. 한 달에 몇 백씩 투자한다고 해봤자, 어쨌든 그렇게 해서라도 아이들 스카이만 들어가 봐. 꼭 스카이는 아니더라도 '서성중한경외시' 안에만 들더라도 크게 남는 장사지, 안 그래? 돈 벌어 뭐 할 건데? 자식 농사보다 더 수지맞는 농사 있어? 그리고 우리 애들은 말이야. 서울대를 보낼 거야, 반드시. 애들 공부 좀 하잖아. 돈도 되고. 그리고, 지방대학 나와서 젊은 애들 할 일이 뭐 있어? 남자나 여자나…. 아직도 역시 사람은 서울로 가야 하지 않겠어? 이곳에는 뭣보다도, 대학 나은 젊은이들 일자리가 없잖아.”

가람이 아빠의 확고한 지론이었다. 부창부수라고, 엄마 양호영의 생각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유비엘 관장

사정이 그러하다 보니, 사람들은 양호영이 협동조합을 만드는 일에 대해서 조금은 시큰둥해하는 것에 대해서 대놓고 뭐라 할 수도 없었다. 그렇지만 청어람작은도서관 유비엘 관장의 생각은 크게 달랐다. 협동조합 방식을 제대로만 해낼 수 있다면, 그 어떤 고액의 사교육으로도 해낼 수 없는, 질적으로 확실하게 다른 교육적 성취를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신념이 확고했다. 단순하게 비교하자면, 같은 일등이라도 핀란드 아이들은 행복한 1등이고, 한국 아이들은 불행한 1등이라는 것인데, 교육협동조합이 그 상황을 바꿀 수 있다고 그는 믿고 있었다. 아이들이 공부는 공부대로 잘하고, 행복은 행복대로 챙겨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유비엘관장은, 교육협동조합은 사교육비 부담의 문제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교육생태계를 바꾸고 더 나아가 교육의 질까지도 확실하게 달라지게 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장기적으로는 공교육에까지 확실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대한민국의 교육의 난맥상에 대해서, 그리고 그 대안으로서의 협동조합 방식에 대해서 진지하고 집요하게 그리고 오랫동안 고민하고 시도해온 그의 선견지명이라 할 수 있었다. 놀랍게도 훗날 그들의 교육협동조합의 성과는 거기에 거의 정확히 들어맞아 갔다. 그런데, 교육협동조합을 만들어볼까 하고 뭣도 모르면서 덤벼든 그들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청어람관장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직은, 아니었다. 그들 자신의 생각도, 여기저기서 전해져오는 이웃들의 의견도, 당시로서는 대동소이했다.

“하지만 관장님의 생각은 너무 한국의 현실을 모르거나 무시하고 하는 소리 아닌가요? 다른 건 몰라도 대학입시 위주의 학교교육이라는 엄중한 현실을 도외시할 수는 없잖아요.”

“맞아요. ‘너 죽고 나 살자 식의 경쟁교육의 현실을 생각해 봐. 어디 한가하게 협동이야, 협동은? 초등학교 아니라 유치원, 아니, 뱃속 아기 때부터 태교다 뭐다, 선행이다 뭐다 죽자사자 경쟁으로 피 튀기는 판국에 협동이 대체 뭔 한가한 소리야?’ 대부분 학부모들이 그렇게들 생각하거든요.”

“저부터가 그래요. 협동조합이 됐든 뭐가 됐든 거기에서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우리 아이들의 경쟁력을 높이는 게 아닌가요? 학교공부도 잘하게 되고, 독서논술에도 도움이 되고, 그리고 요새 유행하는 그 스펙인가 뭔가를 쌓을 수 있는 다양한 기회도 제공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솔직히 말해서, 협동조합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학교교육은 무기력하고, 사교육은 우선은 돈도 돈이지만, 질적인 문제도 문제다 싶어서, 우리 아이들 살 길, 우리 스스로 만들어 보자는 게 아닌가요? 교육의 질은 높이고 비용은 낮춤으로써.”

“그런데, 사실, 솔직히 얘기해서, 가진 게 별로 없는 평범한 사람들 몇몇이 모여서 운영하는 방과후 공부방 정도로 뭔가 그럴 듯한 게 가능하긴 가능할까요? 학교 끝났다 하면 학원을 순례하는 아이들을 한 군데 모아서, 함께 숙제하고 책이나 읽게 하는 정도지. 가끔 주말에 야외로 체험학습 겸 놀러 다니는 것 하며…. 거기에서 무슨 수업이나 강의를 한다고 해도 개인과외나 학원을 따라가겠어요? 질적으로 경쟁이 안 될 걸요? 싸서 맛이 없으니 비지떡이지, 괜히 비지떡이에요?”

 

로치데일 협동조합

그러나 사람들은 시간과 더불어 협동조합에 대해 차차 알아가기 시작하자 점차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알면 알수록 더 알고 싶어지는 것, 그 중에서도 그 뿌리에 대해 알고 싶어지는 것, 그것은 인지상정일 뿐더러 문제를 제대로 풀어가기 위한 정석의 출발점이었다. 따라서 협동조합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감을 잡게 된 그들은 자연스럽게 ‘로치데일 공정선구자협동조합’에 대해 관심을 집중하게 되었다. 유비엘관장이 적극 권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로치데일 협동조합 이전에도 비슷한 목적을 가진 협동조합형 시도는 상당수 있었다. 그런데 로치데일은 성공했고 다른 것들은 실패했다. 로치데일은 최초의 근대적 협동조합으로 기려지게 되었다. 로치데일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잠깐 사이에 급속도로 협동조합에 대한 집중도가 높아진 강민희가 로치데일 조합에 대한 간략한 보고서를 내놓았다. 그것은 [깨어나라 협동조합]에서 발췌, 요약한 것이었다.

1800년대 영국은 산업혁명의 절정기였지만, 일부의 자본가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노동자들은 힘겨운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농촌을 떠나 도시로 유입된 노동자들은 심각한 도시문제-슬럼화, 주택 부족, 주택환경의 악화, 과밀화, 위생 문제 등-로 고통을 받았고, 자동화된 기계는 숙련된 장인 노동자들을 일자리에서 밀어냈으며, 그나마 얻은 직장에서는 장시간의 노동을 감수해야 했다. 노동 조건만 최악이었던 게 아니라, 많은 노동자와 그들의 가족들은 열악한 생활환경 속에서 영양실조와 병에 시달렸고, 희망 없이 하루하루를 견뎌야 하는 일상은 노동자들을 술에 빠지게 만들었다. 노동자들의 삶은 경제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점점 황폐해져 갔던 것이다.

바로 그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던 로치데일의 노동자들은 이를 타개할 대책을 스스로 찾아 나섰다. 처음에는 노동을 조직해서 자본가들에게 대항함으로써 길을 찾고자 했다. 그러나 파업 등 그들의 방법은 실패로 끝났다. 자본가들과 권력은 탄압할 뿐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한편 영국에는 17세기부터 우애조합(Friendly Society)이라는 전통이 있었다. 우애조합이란 숙련된 장인들이 모여 상호부조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공제조합이었다. 우애조합은 조합원으로부터 기금을 모으고 이렇게 모아진 기금으로 조합원과 그 가족이 불의의 사고를 당하거나 복지 혜택이 필요할 때 기금을 지급하는 조직이었다. ‘마법의 2펜스’, 우애조합 노동자들은 매주 2펜스씩을 모아나갔었다.

우여곡절 끝에 우애조합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지만, 1843년 11월 어느 날 저녁 열린 토론회를 계기로 잉태된 로치데일 협동조합은, 바로 그 ‘마법의 2펜스’에 주목했다. 3명의 조합원이 마을을 세 구역으로 나누어 매주 일요일마다 조합원집을 방문했고, 나중에는 계획을 앞당기기 위해 출자금액을 3펜스로 늘렸다. ‘로치데일 공정선구자조합’(The Rochedale Society of Equitable Pioneers)은 거의 1년이 지난 후인 1844년10월24일, 등기를 마쳤다. 그리고, 1844년12월21일 저녁, 마침내 조합 소유의 자그만 점포를 열었다.

그 가게는 처음에는, 빈약한 재정 때문에 구비한 물건이 너무나 형편없어서 마을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었다. 자금이 부족했기 때문에 조합은 충분한 물품을 들여올 수도 없었고, 또한 어렵게 들여온 물품도 품질이나 가격 면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상인들의 돈을 빌려 썼기 때문에 조합 점포를 이용하지 못하는 조합원들, 먼 곳까지 불편한 발길을 옮겨줘야 하는 다소간의 귀찮음, 별로 좋지도 않은 물품을 이웃 상점보다 조금 비싸게 사야 하는 희생…. 그렇듯이 중첩된 난관들. 그러나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로치데일 조합의 작은 가게는 큰 이익을 남기는 것보다는, 순수한 품질, 정확한 중량, 정직한 계량, 공정한 거래, 깎고자 하지 않는 구매, 속이지 않는 판매 등 거래의 도덕적 개혁을 실현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시류와는 전혀 달랐다. 따라서 조합의 가게는 시간이 흘러가면서 점차로 안정이 되고 발전하기 시작했다.

다음 단계로 노동자들은 그들이 목표로 했던 생산에 착수했다. 조합 설립 후 6년 째인 1850년, 조합은 이번에는 ‘로치데일 제분조합’(Rochedale Co-operative Corn Mill)을 설립한 것이다. 제분조합은 조합원에게 순수하고 위생적이며 양질의 밀가루를 공급하고, 이렇게 해서 얻은 이익을 조합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조합의 물품을 이용하는 노동자에게 분배한다는 취지로 설립되었다. 여기에서도 역시 처음에는 충분한 자금을 확보할 수 없었던 탓으로 나쁜 품질의 원료를 사용하게 되어 제품의 품질이 문제가 되었다. 품질이 떨어지자 당연히 조합원의 이용도 줄어들기 시작했고 조합은 위기에 빠졌다. 적자는 늘어났고 탈퇴하는 조합원도 생겨났다.

그러나 조합원들은 출자를 늘리고 커다란 희생을 무릅쓰면서 이 난관을 극복했다. 그런데 그들의 공장에서 나온 밀가루는, 다른 곳에서 생산하는 것들과는 달리 이물질을 섞지 않은 순수한 밀가루 그 자체로서, ‘노란 밀가루’라 불렸다. 노동자들은 아내에게서 왜 이런 질 나쁜 밀가루를 먹어야 하느냐는 불평을 들어야 했다. 색과 맛이 시중의 것과 다른 밀가루는 처음에는 조합원들로부터 외면당했다. 조합의 이용자들이 밀가루 본래의 색과 맛을 잊었던 것이다. 그러나 ‘노란 밀가루’라 하여 외면당하던 조합의 밀가루는, 점차로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본래의 미각을 찾아감에 따라 정말로 품질이 훌륭한 것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조합원들이 바로 조합다운 조합을 성사시켜냈던 것이다.

 

십시일반의 힘

발표를 끝낸 강민희가 운을 뗐다.

“산업혁명 당시 영국의 상황에서 대부분의 노동자들에게는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긴급한 문제였다면, 오늘의 우리에겐 아마 자녀 교육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추진하고 있는 교육협동조합의 관점에서 로치데일 협동조합의 경우를 살펴보자구요. 말하자면, 로치데일 협동조합이 노동자들로 하여금 ‘좋은 빵을, 공정한 값으로’ 먹을 수 있게 해준 역사적 사실을, 오늘날 우리의 필요에 맞춰 ‘좋은 교육을, 공정한 비용으로’라고 바꿔놓고 생각해보자는 거지요.”

오민지가 토론을 이끌었다.

“당시 영국의 노동 환경의 현실은 우리가 처해있는 오늘날의 교육 환경과 대비될 수 있지 않나 싶어요. 로치데일 사람들은 열악한 노동환경, 생활환경을 이겨내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거듭 실패하고 말았고, 우리는 예나제나 대통령도 장관도 국회의원도 교육개혁을 강조하고, 언론도 교육자들도 학부모들도 소리 높여 외치지만, 전혀 변하는 게 없이, 어제도 오늘도 아이들은 숨이 막혀 하고, 오금이 저려 하고, 머리에 쥐가 나고 그래서 비명을 질러대면서 옥상에서, 그리고 다리 위에서들 떨어지고 있는 거지요. 기회가 있으면 동네에 있는 중고등학교 교실을 한번 쯤 들여다보세요. 숨이 턱 막히고 다리에 맥이 풀려요. 초등학교 교실은 그나마 비교적 나은데…. 더욱 나쁜 것은, 빈부의 차이가 교육의 차이를 결정하고, 교육의 차이가 다시 빈부의 차이를 고착화시킨다는 것이예요. 그런 것들이 인정하기는 싫지만, 정도의 차이, 표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바로 우리 아이들도 지금 겪고 있고, 그리고 지금 이대로라면 장차에도 겪게 될 상황인 것은 분명해요. 한 마디로 말해서, 로치데일이나 우리나 똑 같이 싸움에 실패했다는 건데요. 근데, 로치데일 사람들은 결국은 이겨냈지요. 우리는 반대로, 아직까지는 거듭 실패해 왔고, 그리고 여전히 실패하고 있고…. 게다가 날이 갈수록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거네요. 자, 여기에서부터 이야기를 출발해 보십시다.”

“저는 우리 토론의 방향을 이렇게 정리해보고 싶어요. 로치데일 사람들은 ‘좋은 빵’을 위해 무엇을 했느냐, 한편 우리는 ‘좋은 교육’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이냐? 지금까지 무엇을 해왔느냐를 따지면서 책임 추궁하고 절망하는 것을 넘어서,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이냐를 놓고 고민해야 한다는 거지요. 실사구시 차원에서 말이예요.”

“그런데 저는, 사실 로치데일 사람들의 성공은, 자신들과 같은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도전하면서 시행착오를 거듭했던 이전의 역사에 대한 진지한 성찰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봐요. 도전의 기본적인 방향을 보여주는 로버트 오웬의 방적회사, 실천적인 방법으로서의 우애조합의 시도, 그리고 로치데일 조합을 만들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된 대토론회도 그렇고…. 요컨대, 궁극적으로 우리가 로치데일로부터 깨달아야 하는 문제의 핵심은, 어쨌거나 그들은 문제의 심각성을 절감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직접적인 행동에 나섰다는 거 아닐까요?”

“맞아요. 저는 그 직접행동의 출발점으로서, 실패한 우애조합으로부터 차용한 ‘마법의 2펜스’ 부분에 감동 먹었어요. 당시 2펜스가 어느 정도나 부담이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나씩 하나씩 벽돌을 챙겨가는 느낌이 좋았어요. 그렇게 1년쯤 걸려서 조그만 가게 하나를 열게 되었다니, 얼마나 감동적이예요? 목표를 향하여 그것이 실현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한 걸음씩 꾸준히….”

“저는 그 2펜스 부분이 꾸준히에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니,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예요. ‘좋은 빵’을 위해 자본가들에게 요구도 하고 떼를 쓰기도 했었지만, 로치데일 사람들은 그게 안 되는 걸 알고는, 허구헌날 남들한테 매달리거나 자기들끼리 한탄하거나 자학하거나 체념하지 않고, 자기들 자신과 앞선 실패들로부터 교훈을 얻어, 종국에는 십시일반, 그들 자신의 동원 가능한 자본을 스스로의 힘으로 조직했다는 거 아니예요? ‘2펜스’가 상징하는, ‘스스로 동원 가능한 실천적인 힘’, 그게 로치데일의 가르침이 아닐까 해요. 다시 반복할까요? 으흠! ‘스스로 동원 가능한 실천적인 힘!’”

“그 십시일반의 자본만으로,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그들 자신을 위한 ‘좋은 빵’을 직접 공유해냈고.”

“바로 그게 핵심 아닐까요? 우리가 로치데일의 의미로서, 발견해내고 살려내야 하는 게?”

“한 마디로 말하자면, 우리 ‘스스로의 십시일반의 힘’으로 ‘좋은 교육’을 실현해내자?”

“그렇지 않나요? 십시일반의 체계를 쫌 있어 보이는 표현으로 해서, ‘협동조합’이라 하는 거구. 간단히 말하자면, ‘좋은 교육’을 실현하기 위한 십시일반은 곧, 교육협동조합!”

“하하하! 거 말 되네요. 좋아요, 교육협동조합!”

“흠… 공자님도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항산(恒産)이 있어야 항심(恒心)이 있는 법이라고.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한다지 않아요?”

“[깨어나라, 협동조합]에는, 이런 표현이 있더군요. ‘구체성과 지속성을 담보해낼 수 있는 경제적 결사체’. 저는 그 표현이 협동조합의 의미를 딱 짚어낸 것으로 봐요. 말하자면, 우리가 만들어내려는 교육협동조합이란, ‘교육개혁의 구체성과 지속성을 담보해낼 수 있는 경제적 결사체’라는 거지요.”

“물론 경제적 결사체라는 것이 교육개혁의 구체성과 지속성을 담보해내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아닐 테지요. 그래서 로치데일 사람들은 꾸준하고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서 몇 가지 서로 합의한 협동조합의 원칙을 공유함으로써, 필요충분조건을 충족시켜 나간 거구요. 저는 무엇보다도 로치데일 사람들이 조합원 교육을 강조한 사실에 방점을 두고 싶어요. 더구나 우리가 만들려는 협동조합은 교육협동조합이라는 점에서라도 교육 부문에 더더욱 방점이 찍혀야 하고요.”

“그래요. 우리가 하려고 하는 ‘교육협동조합’은, ‘교육’이라는 특수한 목적을 위한 것이라서, ‘교육’과 ‘협동조합’의 양측면에 대한 동시적 고려가 필요할 거예요.”

 

‘좋은 빵’을 넘어

“자, 한 걸음만 더 나아가 보도록 하지요. 저는 로치데일 협동조합이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좋은 빵’을 위한 자구책만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역사적 사실에 보다 더 주목하고 싶네요.”

“자기도 그래? 나도. 로치데일 협동조합은, 조합원들에게 다만 ‘좋은 빵’을 구할 수 있게 해준 것만은 아니었지 않나요? 그 설립과 발전의 과정을 차근차근 살펴보면, 로치데일 조합은 힘 없고 가난한 사람들의 전유물로서가 아니라, 즉, 단순한 경제적 약자의 협동을 넘어서, 전반적인 사회적 통합과 개혁의 장으로 전개되어 나아갔음을 알 수 있거든요. 1800년대 당시 영국 노동자들의 삶은 경제적으로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극도로 황폐해져 갔던 건데, 협동조합의 힘이 그걸 사회 전체적으로 역전시킨 거… 아닌가요? 좋은 빵은 좋은 빵만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거지요. 사람들이 달라지고 사회가 달라지고 역사가 달라지고…. 근데 그게 교육협동조합의 경우라면 그 파급력이 어떻겠어요? 난 지금부터 마음이 막 설레요. 하하하!”

“중요한 사실은, 그렇게 달라지는 사회적 역사적 환경이 곧 바로 아이들을 위한 교육환경의 변화로 연결된다는 거지요. 교육은 다시 사회와 역사를 바꿀 거고. 교육과 교육환경의 선순환! 바로 그거지요. 진짜 두근두근, 일본어로 도키도키예요. 교육이 달라지면 환경이 달라지고, 환경이 달라지면 교육이 달라지고. 하하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어쨌든 협동조합은 ‘스스로 동원 가능한 실천적인 힘’으로 가능한 일을 해내자는 것, 아닌가요? 여기에는 물론 ‘경제적인 십시일반’을 넘어서는 무엇이 더해져야 하구요. 그것을 로치데일 사람들은 조합원 교육으로 풀어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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