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당한 공적 문서와 합의, 의도적인가 무능함인가?
허당한 공적 문서와 합의, 의도적인가 무능함인가?
  • 숨비소리
  • 승인 2019.03.03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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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제2공항 문제가 훌쩍 3년이 지난 지금도 타결되지 않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터이다. 그 중에 제2공항 관련 공식 문건이나 협의내용들 중에 숱하게 드러나는 허당한 대목들이 상징하는 바는 무엇일까? 당장 세 가지 유형이 보인다. 하나는, 여러 항목들이 서로 모순된 경우이다. 다른 하나는, 공문서인데도 불구하고 지켜지지 않는 ‘허멩이 문서’이고, 또 다른 하나는, 내용이 상황맥락에서 벗어나 있는 경우이다. 요컨대, 이들은 제주 제2공항 건설이 국책사업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긴 하면서도 치밀하지 않게 추진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례1> 내용 자체가 모순이라 갈등을 야기할 수 밖에 없는 문서 

다음 내용은 국토부장관(신공항기획과장)을 수신자로 하고, 제주도지사를 발신자로 하는 “제주 제2공항 건설사업 추진에 따른 건의”라는 제목의 공문서 내용이다.

다    음

1. 제2공항 사전타당성 재검토 용역과 관련하여 제기되고 있는 부실의혹을 해소하기 위하여 사전타당성 재검토 용역과 기본계획수립용역을 분리해서 추진하도록 한다.

2. 사전타당성 재검토 용역은 부실의혹을 해소할 수 있도록 공정성을 가지고 추진해야 한다.

3. 사전타당성 재검토 용역 결과는 기본계획수립용역 발주 여부를 결정하는 구속력을 갖도록 한다.

4. 제주특별자치도는 이 같은 내용을 국토교통부에 건의하여 추진될 수 있도록 책임성을 갖고 노력한다.

5. 제주특별자치도와 제2공항 반대 성산읍대책위원회는 이 같은 내용의 건의와 요구가 관철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협의키로 한다.

1번을 보라. “사전타당성 재검토 용역과 기본계획수립용역을 분리해서 추진한다”는 것이다. 분리 추진이라는 말은 서로 상관관계 없이 따로 추진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3번을 보라. “사전타당성 재검토 용역 결과는 기본계획수립용역 발주 여부를 결정하는 구속력을 갖도록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사전타당성 재검토 용역 결과에 따라 기본계획수립용역 발주 여부가 결정된다는 것으로, 이번에는 양자는 불가분리의 관계를 갖는다.

이 공문은 제주도지사가 국토부장관한테 보낸 것이다. 이 공문에 충실하자면 국토부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작금에 국토부가 보여주는 모습은 1번에 충실하다. 사전타당성 재검토 용역에 제기된 부실이나 조작의혹이 해명되든 말았든, 정부는 기본계획 용역을 강행하고 있다. 한편 반대대책위 측에서는 입지선정 타당성 의혹이 해명되지 않았으니 기본계획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고 반발하고 있다. 논리적으로 보더라도 3번이 맞다. 사태가 꼬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2, 4, 5번은 하나마나한 이야기다. 적시되거나 안 되거나 당연한 책무 아닌가?

이 공문이 빚어내는 사태는 의도적인 것인가, 무능함에서 오는 것인가? 어느 쪽이 되었든 공문서 하나 제대로 되지 않는 이게 나라꼴인가? 원희룡 제주도정만의 문제인가?

 

사례2> 내용은 좋으나 지켜지지 않아 알멩이가 사라진 '허멩이 문서'  

이번 사례는 공문서상 내용들이 모순되지도 않고 내용 자체도 훌륭하다. 치명적 문제는 그것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스스로 생산한 이 공문서 내용대로만 국토부가 실행했더라면 작금의 논란과 갈등은 이미 사그라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어느 쪽으로든 해결의 방향을 잡았을 것이다. 아래는 국토부 장관이 제주 제2공항 반대 성산읍대책위원회에 보낸 공문 내용이다. 공문서의 제목은 “제주 제2공항 입지선정 타당성 재조사 검토위원회 구성 운영 관련 의견회신”이다.(일부 발췌)

0.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타당성 재조사를 위해 정부는 예산을 투입하여 전문기관이 용역을 수행토록 하였으며, 이에 따라 우리부는 객관적 재조사 결론 도출과 예산집행 측면을 종합 고려시 ‘타당성 재조사 연구기관의 조사결과’, ‘검토위원회 권고’, ‘공론조사 시행시 그 결과’ 모두를 함께 존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되며(중략)

0. 공론조사를 실시할시 그 기간을 ‘검토위원회 운영 기간 중’으로 명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사료됨.

결국 최종적으로는 입지선정 재조사 결론 도출은 국토부의 몫이라 못을 박고는 있지만, 이 내용대로만 실행이 되었더라도 국토부로서는 ‘절차적 정당성’의 상당 부분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전문기관의 재조사, 이에 대한 검토결과 반영, 그리고 거기에다 필요하다면 협의해서 공론조사까지 시행하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지금쯤 국토부측에서 크게 후회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때 그냥 검토위 활동기간을 2개월 연장해주고 마무리 지었더라면 하고 말이다.

하지만 당시는 분명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을 터이다. 위험한 추측이긴 하지만, 검토위에서 제기된 쟁점들 중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용역진의 자체 주장과는 달리, 국토부측에서 보기에도 입지선정의 타당성을 위협할 수 있는 ‘위험한’ 내용이 있음을 깨닫고 “앗, 뜨거라!” 하면서 판도라의 상자 두껑을 황급히 덮었던 그런 상황이 아니었을까? 검토위 활동이 아무리 구속력이 없다고 하더라도, 거기에서 도출된 문제점, 제기된 의혹들이 토론 결과 입지선정 타당성에 치명적인 것으로 객관적으로 입증된다면, 그것을 무시하고, 문제가 입증된 부지를 대상으로 기본계획 용역에 착수하는 데 정부가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터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국토부가 공식적으로 한 약속은 그들 스스로의 선택 때문에 공염불로 돌아갔고, 논란은 확산되었다. 아직도, 부실과 조작의혹은 해명되지 않았다. 입지선정 타당성 재조사는 끝나지 않았다. 정부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던 탓이 크다. 정부의 공문서는 ‘허멩이 문서’가 되고 말았다. 검토위 일방 중단 전후 경위에 대한 별도의 조사와 해명이 필요한 이유이다.

 

사례3> 상황맥락을 놓치고 성급하고 안이하게 판단하여 합의한 경우

갈등이 날로 심해지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이번 경우는, 사태를 해결하고자 하는 민주당 의원들의 의지는 평가할만했지만, 결과적으로 커다란 실책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상황맥락을 잘못 판단했거나, 그게 아니라면 ‘불순한’ 의도를 가졌기 때문이다. 민주당 의원들이 논란의 중심에 자리한 ‘검토위원회’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면, 검토위와 기본계획을 병행시키는 합의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례1>과 비슷한 맥락이다.

아래는 정부와 여당인 민주당 정책협의회의 합의내용 중 일부이다.

2. 국토부는 기본계획 수립 용역을 계획대로 진행하면서, 검토위원회 활동을 2개월 추가 운영한다. 필요한 자료를 충분히 제공하여 제기된 쟁점을 해소, 논의된 사항을 기본계획 내용에 반영한다.

“검토위원회 활동을 2개월 추가 운영한다.” 민주당 의원들은 어쩌다 순서가 거꾸로인 검토위 연장안을 합의하게 되었을까? 이미 용역이 진행중인 기본계획과 순서가 뒤바뀐 검토위원회는 전혀 의미가 달라지는데, 그것을 몰랐을까? 검토위 논의사항을 기본계획 내용에 반영한다니, 그게 가능한가? 오히려 반대로, 검토위 활동결과가 기본계획 용역 착수 여부를 결정하는 데 반영되어야 하는 것이다. 검토위 논의 대상은 확정전 후보부지이고, 기본계획 대상은 검토후 확정된 공항부지이기 때문이다. 말을 마차 뒤에 매어서 마차를 달리게 하는 게 가능한가?

합의문은, 결과적으로 보면 민주당 의원들이 제2공항 논란의 과정 전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반증이다. ‘검토위원회’가 왜 만들어졌는지를 모르는 게 아닌가,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개념이 없지 않나 하는 의심을 하게 만든다. 검토위원회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다. 제2공항 추진이라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일정한 위치와 그에 걸맞는 역할이 있는 것이다. 순서상 위치가 달라지면 기능과 역할이 달라진다. 경우에 따라서는 전혀 무의미해지기도 한다. 다만 검토위원회 2개월 연장 자체만으론 절차적 정당성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오직 절차적 정당성이라는 미명하에 있으나마나한 장식품이 될 뿐이다.

기본계획 용역을 일시적으로라도 중단하거나, 재개된 검토위에서 입지선정 타당성을 입증하는 데 실패할 경우 기본계획을 무효화하겠다는 전제가 없는 한, 현재 상태 그대로 검토위원회를 재개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혹시나 국토부측에서는 지금은 이미 기본계획 용역에 들어간 마당이니 무의미한 검토위원회 재개니 주민설명회니 정책토론회니 적당히 ‘절차적 정당성’ 시늉을 해주면서 구렁이 담넘어가듯 하려는 게 아닐까? 민주당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그런 기만술에 멍석을 깔아준 게 아닐까? 담장위에 까칠한 멍석을 깔아주는 것은 구렁이가 담을 넘는 데는 더 이상 좋을 수가 없다. 당정협의 합의문을 들여다볼수록 그런 의구심을 금할 수 없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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