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 흙담 스토리 3
희곡) 흙담 스토리 3
  • 숨비소리
  • 승인 2019.02.26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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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희곡은 마을주민 연극으로 올리려 만든 작품입니다. 작가, 연출, 배우 모두 아마추어로 구성, 추진하려 계획중이었습니다. '이야기' 내용은 마을 사람들이 함께 고진사의 주도하에 동네어구에 수백그루 소나무를 심었다는 일부만 역사적 사실이고 나머지 대부분은 작가의 문학적 상상력에 바탕을 둔 허구입니다.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편집자주)
조선 의병들, 인터넷 캡쳐

 

3막>

(동네 사람들 흙담 공사장에서 열심이다. 그때 북소리가 급하게, 아주 큰소리로 온 동네에 울려퍼진다.)

소리 : 나라가 망했져! 우리나라가 망했져! 조선이 망했져! 쪽바리들이 우리나라 들러먹어부렀져!

현가 : 저거 먼 소리라? 어?

김가 : 이거 미시거라. 우리나라가 망해부렀다고?

현가 : 미시거? 망해부러서? 우리나라가? 조선이? 우린 동네 재앙 막으캔 동분서주 허당 보난 나라가 망해부러서? 거 참.

박가 : (아무 말도 없이 하늘 봤다 땅 봤다) 결국은 경 되고 말았단 말이라. 허이고.

아주머니 1 : 기어코 망허고 말았져. 경 막아보잰 해신디 안 되었져. 변치비 아들은 용감허게 의병꼬지 나서면서 나라를 지키잰 허여신디, 가이 죽음이 개죽음이 되고 말았져. 아이고, 아이고! 불쌍해서 어쩌나.

아주머니 2 : 동네 재앙 막아지카부댄 흙담이여, 소나무여, 연못이여 난리를 치단 보난, 이게 미시거니? 나라가 망해부러신디 이보다 더 큰 재앙이 이시크냐!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게!

양가 : 난 들어가크라. 일 헐 힘도 안 나곡. 오랜만에 항우지 강 낚시나 허당 오크라. 나 감서.

부가 : 경 허잰? 고찌 걸어. 정말로 오래간만에 손맛이나 좀 보카이? 은철이 아방은 안 가잰? 매움탕에 탁주 두어 사발 들이키민 좀 힘 날 거 아닌가? 나라가 망해도, 힘은 길렁 놔둬사주. 힘 이시믄 아무디라도 쓸 디 이실 거 아닌가 이?

(그 때 나까무라가 하인에게 지게짐을 지우고 흙담 공사장에 등장)

나까무라 : 안녕들 하시므니까? 안녕들 하시므니까? 아, 근데 기분들이 별로 안 좋으시므니까? 표정들이 보니까 그런가 보므니다.

박가 : 허이, 쪽바리 양반! 우리 기분 알아서 뭐 허쿠과? 기분 같아선 한 대 치고 싶은데 죽게 촘암시난 어지렁거리지 말앙 어디 볼 일이나 보레 가든지 말든지.

나까무라 : 하이, 하이. 네, 네. 일부러 여러분 기분 거스리려 한 건 아니므니다. 용서하시므니다. 실은 여러분 기분 울적하실까봐 소주 몇 병 챙겨 왔스므니다. 위로 겸 힘내시라고. 이젠 어차피 우리 일본이랑 조선이 한 나라가 되었으니까 서로 도와야 되지 않겠스므니까?

현가 : 미시거라? 이놈의 쪽바리 새끼가 누게 약 올리는 거냐, 뭐냐? 야! 당장 꺼져. 한 대 주서맞기 전에. 에이그!

문가 : 참게 참아. 이 사름아, 경허당 사람 치큰게. 쪽바리들 쳤다간 큰일 나. 읍내에선 진작서부터 그 놈들이 설쳐 왔댄 헹게. 경해신디 이제는 나라가 아예 통째로 넘어가부러시난 섣불리 잘못 건드렸다간 뼈도 못추리게 될지 몰라. 우리도 기냥 못 본 척 낚시나 걸라. 걸라.

(퇴장. 반대편에서 변가가 취해서 울었다 웃었다 어슬렁어슬렁 등장한다.)

나까무라 : 오오, 변상! 안녕하시므니까? 반갑스므니다.

변가 : (히벌쭉 웃었다, 울었다. 많이 취한 모습) 오, 나까무라상! 하이, 하이! 어쩐 일이우꽈?

나까무라 : 오늘 기쁜 소식이 있어서 함께 축하하려고 달려왔스므니다. 일본과 조선이 합방한 날이 아니므니까? 하하하.

변가 : 아니, 아니! 나까무라상! 이디 사름들은 그 때문에 울고불고 난린데…. 이추룩 눈치가 어실 수가. 나까무라상, 우린 조선 사람이우다. 경허곡! 나 아들 무사 죽어신지 알암수과? 이 양반아. 우리 아들 개죽음 되부러서. 에이! 이 쪽브! 에이!

나까무라 : 하이, 하이! 그렇스므니까? 그렇게 속상하시무니까? 5년이나 지났는데

변가 : 이 놈아, 기여. 잊어불만도 했져. 경헌디, 잊어불카 해신디 이거 보라게. 잊어지크냐. 우리 아들이 무사 죽어신디, 나라 망하는 거 막아보켄 허단 죽어신디 그 나라가 망해부러시난 어떵 생각나지 안 허크냐? 어떵 부뚜매기 대싸지지 안 허크냐? 경헌디, 경헌디 당신고튼 쪽바리 시키가 바로 그날, 나라가 망헌 날 코 앞이 왕 부아를 숙대겸신디 어떵 잊어불크니? 이 나쁜 놈이 시키, 쪽바리 시키야.(비틀거리면서 퇴장)

나까무라 : 하이 하이, 네, 네. 그렇스므니까, 그렇스므니까? 죄송하게 되스므니다. 죄송하게 되스므니다. 난 또 순이 혼담도 좀 잘 진행되는 것 같고 하니까 다 잊어분 줄 알고…. 일본 사름, 조선사름 우리 둘이 다 마음이 통하게 된 줄 알고…. 하이 하이, 알았스므니다. 알았스므니다. 그러믄 오늘은 이만 가겠스므니다. 저기 술은 놔두고 가겠스므니다. 술 깨믄 우리 여관에 오시므니다. 하이, 하이.

(나까무라 퇴장. 순이 반대편에서 등장. 삽, 괭이, 등등 연장들 흐트러진 채 다들 가버린 일터 현장. 구석에서 힘없는 모습으로 철이 혼자 꾸역꾸역 일하고 있다.)

순이 : 아니, 뭐햄서? 아무도 어신디 청승맞게. 오늘 같은 날은 일 안 해도 되여. 일헐 기분이 나?

철 : 미시거?(팩 한다.) 미시거? 미시거옌 고람서? 무사 오늘 같은 날은 일허민 안 되여? 무사? 무사? 오늘은 일허민 안 되어? 에이!

순이 : 아이고게. 무사 이거? 무사 나한티 경 화 냄신고? 이거 보라게. 어른들 다 손 놔돈 바당이여 주막이여 다들 가부러시녜. 오늘같은 날은 그추룩 해도 되여. 나도 맥이 탁 풀어졈신게. 의병허단 죽어분 오라방 생각도 막 나곡. 울어지큰게. 아방은 나라 망했다는 소식 들으난 그때부터 술 퍼먹언게. 오라방 생각 허는 게 분명허여.

철 : 나도 경허고 싶어. 나도. 나도 막 술도 먹고 싶고 바당에라도 팍 빠져불고 싶어. 에이! 에이! 진짜 기분 더럽다게. 에이!

순이 : (심상치 않다는 듯 철이를 살펴보고, 주위를 돌아다보고) 미신 거 다른 일 이신 거 닮다. 나라 망헌 거 보다 더 큰 일 이신 거 닮다. 진짜 큰 일 이신 거 닮다. 진짜 별 일 이신 거 닮다. 경이나 안 허민 이추룩 헐 사름이 아니여. 난 알주게. 다른 별 일이 이신 거 닮다. 미시거라? 진짜 미시거라? 나라 망했댄 허는 날, 그보다 큰 일이 미시거라?

철 : 기여. 기여. 나한틴 나라 망헌 거보다 더 큰 일이 있져. 나만 몰랐져, 나만 몰라신 거 닮아라. 에이!(들고 있던 괭이를 내동댕이친다)

순이 : (흠칫, 놀라서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선다. 그리고 가만히 철이를 쳐다본다.)

…………

철 : 게메. 일이 너무 잘 풀려감댄 속으로 생각했져. 혹시나 허면서도 믿었져. 언제민 느네 아방한티 강 넙죽 엎드리코 속으로 생각허고 생각허고 이섰져.

순이 : 경헌디? 경헌디? 경헌디 무사 영 햄서? 술도 안 먹엉 대낮에. 무사 나신디 화내멘? 나라 망헌 거 때문은 안 닮은디? 고라 보라게. 이 오라방아. 나가 모르는 무슨 사정이 이신디 고라보라게. 속 터지키여, 나도. 확 고라보라게. 안 고르민 나가 화내키여 이?

철 : (가만히 순이를 바라본다)

…………

순이 : (가만히 철이를 바라본다)

…………

철 : 쫌 전이 기가 막히는 소리를 들었져. 나한티는 나라 망허는 것보다 훨씬 더 기가 막히는 이야기를 들었져.

순이 : (기다리듯, 가만히 철이를 바라본다)

…………

철 : 느는 알고 이선디야? 몰르고 이섰을 수도 있고…. 크흠. 아까 나까무라가 와서라. 읍내서 상점 한다는 일본사름. 와그네 뭐랜 고라신디 알암다? 크흠. 지네 아들 허고 느 허고 혼인시키잰 허는 모양이라라. 느네 아방도 동의허는 거 닮았고.

순이 : 미시거? 미시거? 말 닮은 말을 허여. 나가 누게랑 뭘 허여? 세상에! 나도 나주마는, 죽어분 오라방은 게민 어떵허라고. 왜놈들 때문에 우리 오라방 죽은 지 멫 년도 안 되신디, 미시거 어떵? 경허고 또, 나가 왜놈 쪽바리 집이 시집간단 말이라! 거 촘, 듣다 듣다 기가 막혀서. 오라방, 어떵 된 거 아니라! 누게가 무신 말을 어떵 해신지는 모르크라마는 좀 새겨 들어봐. 놈 곧는 말 곧이 곧대로 들엉 죽어지키여, 살아지키여 허지 말고 좀 딱 중심 잡아게. 호썰 맥락 있게 허여마씀. 오라방신디 호끔 실망해여졈수다.

철 : (흠칫거리면서) 경허난… 경허난… 식이 형님 일도 이신디 어떵 그런 일이 이실 수 이신가 해서. 사실은 얼마 전부터 거기 아방이 나까무라네 여관 들락거린다는 말 들었주게. 거기 사장한티 나만이 나이 먹은 아들도 있댄 해도 기냥 흘려보내신디… 오늘 아까 나까무라가 직접 지 입으로 순이, 느영 혼담 잘 되고 어쩌고 허는 이야기를 허는 거라. 다리에 힘이 확 풀려 부러라. 나만 탓허지 말라게.

순이 : 미시거? 아멩 경해도 경허는 거 아니라. 나가 누구라. 변순이라. 솜반내 강 한 밤중에 홀랑 벗엉 목욕재계허연 또시 그 밤 열두시에 오라방이영 고찌 손심엉 들렁모루까지 강 그추룩 하느님신디 우리 연분 맺어줍서 맺어줍서 맺어줍서 외와제친 사름 아니라? 경헌디 어떠고 어떵? 다리가 어떵허여? 어떵허여? 쪽바리 말 혼 마디에 경 매가리 어시 해불민 우리 아방 어떵 이기크라? 이겨지크라? 이겨지크라? 하이고, 나 하영 조드라점수다. 오라방 마씀.(퇴장)

철(방백) : (순이 뒷모습을 쓸쓸히 바라본다. 흩어진 도구들을 한 군데로 모아 정리한다.) 나도 몰르키여. 아들이 의병허단 죽언 멫 년 베끼 안 되신디 그 아방은 쪽바리 사장이영 술이여 밥이여 먹엉 댕기곡, 아들 주키여 똘 주키여, 소문내왕 댕기곡, 도무지 모르키여. 그 깊은 뜻이 머신지 나는 모르키여. 큰벼슬 해보켄 한양꺼정 과거 보러 갔다가 나라 망해간다고 몬딱 치와동 목숨 내던졍 의병 허당 죽는 아들도 경 쉽게 이해되지는 안 햄져마는, 그추룩 허단 죽은 아들 이신디, 경 지 아들 죽게 만든 일본 사름들 허고 희희낙락허는 그 아방 속은 더 몰르키여. 그 뿐이냐, 쪽바리한티 똘까지 주켄 허는 건 또 미시거니? 경허고, 순이는 무사 경 날 몰아붙쳠시니? 그런 말 들엉 돌아불지 안 허는 소나이 이시민 나와보랜 허라. 죽어지키여. 죽어지키여, 참말로.

(퇴장)

(FADE OUT)

(FADE IN)

(흙담 공사장. 철이와 순이 넋을 놓고 앉아 있다. 변가 어슬렁, 취기가 가시지 않은 채 등장)

순이 : 술 다 깹디가? 상방에 촐려 둔 조반은 좀 드셔집디가?

변가 : 아이고, 순이야. 머리 아프다. 어제 나 하영 마셔시냐?

순이 : 예. 호썰 과음허신 거 닮수다.

변가 : 으흠. 경헌디 잘 생각은 안 남져마는 어제 나까무라상 우리 집이 와나시냐? 어렴풋이 경헌 거 닮안.

순이 : 아방 진짜 취하긴 취해나수다 예. 집이 아니고 흙담, 여기에서 두 분 만나난 모양이우다. 둘리서 이상헌 얘기도 해댕겼댄 허고.

변가 : 미시거? 거 미신 소리 햄시니?

순이 : 아부지, 솔직히 고라봅서. 그 말 참말이우꽈? 어제 흙담서 나까무라영 헌 얘기 마씀.

변가 : 미신 말 말이니? 누게가 뭐랜 고라니? (휘둘러 본다)

순이 : 솔직히 고릅써예. 그 나까무라상인가 허고, 나 얘기 오가는 거 이수과?

변가 : 미시거? 느 얘기? 미신 얘기?

순이 : 아부지 똘, 나, 나까무라상네 주켄 해댕깁디가?

변가 : 미시거 어떵? 거 미신 소리고? 느가 어떤 똘인디, 쪽바리놈한티 준댄 말이가? 터무니어신 소리여. 누게가 경 고라니? 주둥이를 확! 거 누게고?

순이 : 솔직허게 고릅써 양. 어제 흙담 일허는 디 나까무라가 왕으네 그런 소리 하고 가수다. 나까무라영 이상헌 이야기헐 때 나 여기 이서나수다. 직접 들어수다. 나가 직접 들어서 마씀.

변가 : (물끄러미 딸을 바라본다) 게민…, 느가 직접 들언디야? 으흠! 게민…. (흘낏, 철이 쪽을 바라본다) 나… 고르마. 으흠! 사실이여. 혼담…, 오간 거 사실이여.

순이 : …… 정말이라아…, 마씀?

변가 : 으흠. 기여. 맞다. 그 이야기 해났져.

순이 : 아부지. 아부지. 나도 어제 말고 진작에 아부지가 그 상점에 드나든다는 얘기도 듣곡… 또 그 미신 혼담 얘기도 얼핏설핏 들어났단 거 닮아마씸. 경해도 예. 난 일본놈들이영 싸우단 죽어분 오라방도 이신디 그럴 리가…, 기냥 그 일본사름이 지 혼자 공연히 고라댕기는 말일 테쥬 허멍 흘려 보내수다. 경해서마씀. 경헌디 우리 아방이 혼디 들엉 경허는 줄은 몰라수다. 아부지, 아부지, 나사 그렇다치고. 의병으로 싸우당 죽어분 나 오라방 생각은 안 헙디가? 예? 또 경허곡, 아들 경 죽어부난 가슴아파 허단 몇 달 뒤에 죽어분 어멍 생각은 안 헙디가? 예? 또 경허곡, 애기도 어신 서방 한양 과거 보러 가켄 허난 가젠 헐 때부터 막앙게, 갔단 의병 되언 죽어불었댄 허난, “어리석은 놈!” 혼 마디 허고 보따리 호나 들렁 친정 가분 며느리 생각은 안 헙디가? 예?

변가 : (말 없이 딸을 바라본다.)

순이 : (말 없이 아버지를 바라본다.)

변가 : 죽어분 사름은 죽어분 사름이고, 산 사람은 살아사주.

순이 : 건 또 미신 말이우꽈, 아부지?

변가 : 경허댄 말이여.

순이 : 양? 아부지, 난 양. 아부지 속을 몰르쿠다. 정말로. 여관이사 읍내 거기 호나 뿐이난 댕겼댄 치고, 그 일본사장 허고 경 허영 댕겼댄 허난, 똘 주키여대키여 해댕겼댄 허난… 아부지 대체 이거 미시거꽈? 아부지도 아부지지마는, 난 뭐꽈? 나 인생은 어수과?(철이 쪽을 바라본다. 철이는 근처에서 맴돌며 귀를 기울이고 있다. 일을 하는 듯 마는 듯)

변가 : 또 다시 골아졈져마는, 죽어분 사름은 죽어분 사름이고, 산 사람은 살아사주. 그거여.

순이 : 양? 예. 죽어분 사름, 가분 사름, 산 사름…. 예, 산 사름은 살아사주마씀. 경헌디 마씀. 경허연 어떵 마씀. 고라봅서, 나도 산 사름 아니우꽈? 아부진 그추룩 살곡, 난 어떵 살민 좋쿠과? 고를 말 한 거 닮은 게 마씀.

변가 : 나, 느네들(철이 쪽을 본다), 들렁모루 갔단 온 거 알암져. 들렁모루의 전설도 알곡.

순이 : 예? 어흠. 아부지 알아마쓰음… 경헌디 무사아?

변가 : 경헌디 무사아? 난 그런 전설 따윈 안 믿은다. 들렁모루가 미신거꼬? 기냥 큰 돌멩이 호나여. 무사 나가 그 돌멩이한티 강 고른 걸 따라야 허느니? 어림어쪄.

순이 : (철이 쪽을 본다) 아부지! 아부진 경허난 날 일본사름한티….

변가 : 기여. 는 이제 나신디 똑 호나 남은 혈육이여. 오라방은 오라방이고. 가인 죽어부러시녜. 느라도 펜안히 살아사주.

순이 : 아부지. 경헌디 무사 일본사름이꽈?

변가 : 순이야. 죽어분 느네 오라방 느영 몇 살 차인 줄 알암시냐? 열 살이여, 열 살. 무사 경 차이 나는 줄 알암시냐? 경허곡 느네 오라방 나 멫 살 때 나신 줄 알암다? 서른 요답이여. 그 오라방 앞이 느 언니 둘이나 이섰단 어서져분 거는 알암다? 이거 먼 소린디 알아졈시냐? 느네 어멍 아방 어떵 살아신디 알랜 고람져. 이제사 고람져. 안 고랑 지나가지카부댄 했져마는…. 고를 때 고라도 웃으멍 옛날 얘기 고라질 때 고라지카 했져마는…. 상황이 영 되노난 고라졈져.

순이 : (말 없이 아버지를 바라본다.)

변가 : 어떵? 짐작이라도 됨시냐? 기여. 그추룩 느네 아방 어멍은 죽기살기로 살아쪄. 새끼덜 두 개나 앞세왕 보내도 칭원해질 저리 어시 경 숨보룹게 살아쪄. 경 살아서게. 이 설룬 똘아. 아이구!

순이 : (말 없이 아버지를 바라본다.)

변가 : 그때사 그추룩 안 산 사름이 베랑 이서시크냐마는 우린 호썰 더 경 힘들게 살았져. 경허단 호썰 콧구멍에 바람 쐬멍 살아짐직허난 느가 툭 튀어나와라. 삼신할망이 얼마나 고마운디 산디. 느네 오라방은 원체 영특한 아이란, 누게 배와주는 사름도 어시 혼자 글 깨쳐신디 동네 훈장어른, 고진사여. 그 어른이 알안, 고맙게도 독선생 비슷허게 고르쳐줘라. 느네 오라방 호루가 다르게 일취월장 했져. 경허연 장개도 들곡 해신디도 훈장어른이 세게 권허연 한양에 과거시험 보래 간 거여. 경해신디도 그 놈이 머리가 어떵 되신고라 의병 들어가부런. 경허연 죽어부런. 하이고. 이제 느 호나 남아시녜. 순이야, 나가 아방으로서 어떵해야 허크니? 느네 들렁모루도 댕겨왔댄 호난 기냥 나도 몰르키여 해영 자빠져시민 조크냐. 아니여. 난 경 허지 못허크라라. 경 허지 못 허크라라. 경허연, 경허연, 작년부터 자꾸 나까무라 상이 뭐랜 해도 못 들은 척 있다네…. 느네 오빠 일도 있고 허연, 못 들은 척 허다네 느네 들렁모루 갔다 왔댄 소문 들어져라. 경허난 츠물락해져라. 츠물락허연 술 혼 잔 먹단 나까무라상한티 고라부러쪄. 두고 보게 마씀이라고. 두고 보게 마씀. 거기까지여.

순이 : 아부지. 아부지가 아는 줄은 몰라수다. 언젠가 알게 될 테쥬 허긴 해수다마는. 맞수다. 철이 오라방이영 들렁모루 갔다 와수다. 죄송허우다.

변가 : 경해도 자이한틴 안 된다. 자이가 착헌 건 나도 안다. 경해도, 아맹 착해도 안 된다. 우리가 어떵 살아와신디, 느를 어떵 키와신디…. 느는 영민허다. 훈장님이 경 고라라. 오라방 또라 완 옆이서 앉앙 허는 거 보난, 지집아이라도 오라방 못지 안 허키여 허연 훈장님이 느한티도 소학꺼정 고르치지 안 해시냐? 느는 좋은 신랑 만낭 대처 나강 살아사 헌다. 경 살아사 헌다. 이추룩 쪼끌락헌 모슬에서 느 고튼 아이가 미시거 허멍 어떵 살 거니? 나도 세상 돌아가는 거 호썰 알아진다. 보라. 설마설마 해신디 조선 땅도 일본이 다 먹어부러시녜. 이제 일본 세상이 된 거여. 읍내 출입 허멍 귀동냥 행 보난 이제 일본은 그추룩 센 노시아도 이겨불곡 청국도 이겨불곡. 이 근방에 적이 없댄 해라. 대장이옌 해라. 이젠 일본 세상이여. 시류가 경 흘러가는 거 닮다. 경헌디 조선이 상대해져시크냐? 머리 그추룩 좋은 느네 오라방은 무사 그걸 몰라신고? 망헐 걸 뻔히 알아실 건디 무사 의병인가 뭔가에 불나방추룩 뛰어들어신고? 하이고!

순이 : 죽어분 오라방 나무라진 맙서. 머리가 좋으난 경 해실 거랜 생각됨수다. 머리 좋은 우리 오라방이난 사름이 어떵 살당 어떵 죽어야 할지 알아지난 망해가는 나라 과거 치와불곡, 망해가는 나라 의병 된 걸 거우다. 꼭 이기고 지는 걸 따지지 아니 해실 거우다. 사려깊고 지혜로운 우리 오라방은 잘 살고 잘 죽어수다. 난 경 믿어졈수다. 나도 경 살아져시민 좋쿠다. 살암직이 살당, 죽엄지기 죽어져시민 좋쿠다.

변가 : 미시거 어떵? 아방 앞이서 못허는 소리가 어따. 살암직이 살당 죽엄지기 죽어져시민 좋크라? 느 그거 미신 뜻이고?

순이 : 예. 나도 오라방추룩 살암직이 살당 죽엄지기 죽어져시민 좋쿠다 마씀. 아부지. 아부지.(울음을 터뜨린다.)

변가 : 아니여, 아니여. 살암직이 살당 죽엄지기 죽어지는 게 뭔지 느가 아직 몰를 거여. 아직 몰를 거여. 아맹 경 허고 싶어도 느가 헐 수 있는 건 베랑 어따. 느도 머리 좋으난 다 알암실 거여. 아방 허는 대로 따라 오라. 아이구. 내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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